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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인문학>의 제목만 봤을 때는, 인문학으로 사람들이 행복해지니까 <행복한 인문학>인 줄 알았다. <인문학으로 행복해지기>따위의 제목은 팔리기에 좋은 제목은 아니지, 란 속물적인 생각도 했다. 그러나 책을 다 읽은 지금, 왜 제목이 <행복한 인문학>인지 알겠다. 인문학은 정말 행복하다. 이 책을 읽은 나 또한 행복하다. 이 책은 각 분야(문학, 글쓰기, 철학, 역사학, 예술사)의 교수들이 교도소 수용자, 자활근로자, 노숙인 등을 대상으로 인문학 수업을 진행한 경험을 바탕으로 쓰여졌다. 집필진은 고영직, 도종환, 임철우, 이명원, 고인환, 양훈도, 고영직, 우기동, 박남희, 이병수, 김준혁, 박성준, 김종길, 최준영으로, 각 분야에서 작가, 평론가, 철학자 등으로 활동하거나 교단에 몸담고 있는 사람들이다. 이들의 글은 자신이 소외계층을 수업한 경험을 토대로 하였기 때문에 구체적인 내용은 각기 다르지만, 수업의 과정을 통해 얻은 인문학에 대한 인식과 문제의식을 공유하고 있다. 먼저 이들은 자신들이 시민인문학 강좌를 제안받았을 때, 설렘과 함께 회의와 우려와 두려움을 느꼈다고 말한다. 그 두려움이 무엇인지 짐작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당장 잠자리와 밥이 시급한 사람들에게 인문학이 과연 얼마나 도움이 될지에 대한 의구심이다. 얼핏 보기에도 이건 지적 허영이나 인문학에 대한 믿음에 대한 과신으로 보인다. 그렇지만 이들은 수업을 통해 그들 뿐만 아니라 자신 또한 변화했음을 느꼈다고 말한다. 수강생들은 인문학수업으로 자신의 삶이 바뀌었다고 말했다고 한다. 이건 하루 아침에 잘 곳이, 먹을 것이 생겨났다는 것이 아니다. 하루하루가 절망인 이들에게 시가, 소설이, 철학이, 그림이 행복과 희망을 주었단 얘기다! 이건 기적같은 일인가? 아니다. 우리는 이미 알고 있다. 인문학이란 것이 삶에 희망을 불어넣어주는 것이라는 것을. 그래서 우리는 인문학의 위기를 운운하며, 걱정했던 것은 아닌가. 그리고서 골방에 처박혀, 자신만은 그래도 인문학의 끈을 놓고 있지 않았다고 자위하고 있었던 것은 아닌지. 인문학이 사람을 위한 학문이라는 낡을 대로 낡은 정의는 이들의 실천과 만나 새롭게 피어나고 있는 것이다. 시민인문학은 2005년 9월 성프란시스대학(노숙인을 위한 인문학 강좌)을 시작으로 출범했다. 이후 지역자활후견기관이 성프란시스대학을 역할모델 삼아 인문학 코스를 개설하였고, 2007년 말에는 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움직였다. 학진 또한 인문학 활성화 사업의 일환으로 시민인문학 강좌 지원 프로그램을 기획 실행하여 인문학강좌들이 연속사업으로 이어지게 되었다. 서울시는 경희대에 사업을 위탁하여 '실천인문학센터'를 만들어 서울시 각급 자활기관과 노숙인 쉼터에서 인문학 강좌 12개 코스를 만들었다. 최준영은 이러한 양적 증가를 환영하면서 한편으로는 아직 취약한 시민인문학의 장래를 위해 많은 노력이 필요함을 강조하고 있다. 개인적으로, 하루하루가 갑갑하고 사람들에게 질려있을 때마다 이 책을 들었다. 숨통이 트였다. 경직되고 견고하여 절대 변할 것 같던 갑갑함 속에서 한줄기 빛을 본 것 같았다. 그렇지만 의문도 들었다. 물론 인문학강좌가 소외계층에게 자존감을 회복시켜주어 진정한 주인의식을 갖게 해준다는 것이지만, 지식인-소외계층이란 구도가 확산될 수는 없을까. 인문학만이 답은 아니지만, 물질만능주의와 결과우선주의로 얼룩진 이 사회의 다수에게 인문학이 소외받는 현실 또한 '변화'하여, 인문학이 행복해질 수는 없을까. 이 질문에 대해 아무도 확답을 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정말 시작일지도 모른다. 조금씩 조금씩 사람들이 돈보다 한편의 시를 더 사랑하게 될런지도 모를 일이다. "앞에서 인문학이 가난한 시민들에게 큰 빚을 지고 있다는 말을 했다. 의아하게 들렸을지 모르겠다. 그러나 그 말은 진실이다. 그만큼 인문학은 시민인문학을 통해 거듭나고 있으며 그 의미가 더 넓고 깊게 퍼지고 있다."(223) 초등학교 6학년 때, 우후죽순처럼 생겨난 책대여점은 새로운 세계로 통하는 통로였다. 그 한켠에는 SF소설이나 판타지 소설들이 자리잡고 있었고, SF소설이나 판타지 소설은 다른 세계를 그야말로 '판타스틱'하게 그려낸 것, 즉 비현실적인 "멋진 세계"라고 생각했다. 생소한 체험. 그것이 독서 행위에서도 가능하다는 것을 새삼 깨닫게 한 책이다. 중국, 특히 현대 중국이란 낯선 시,공간이란 문외한인 나에겐 흥미롭게 다가왔던 것을 고백해야겠다. 그리고 새삼, 역사적 사실과 다른 소설의 가능성에 대해 생각해본 시간이었다고나 할까. <Mr. 후회남>은 개성 강한 캐릭터를 통해 그 남자의 후회가득한 일생을 다루고 있지만, 그 배경에는 중국 문화대혁명기의 격동의 시기가 자리잡고 있다. 하지만 둥시는 그것을 전면에 내세우지 않고, 애써 비판하지 않는다. 그저 한 후회남의 일대기를 우스꽝스럽게 그리고 있을 뿐이다. 내 작은 원 안에 갇혀 살다가, 잠시 원 밖을 내다보았다.
전성태, 이미테이션, 문학과 사회, 2009년 겨울호. 소설의 시작은 평범하다. 게리라는 혼혈인(?)은 미국 로컬 스쿨을 그대로 옮긴 학원에서 원어민 강사로 일한다. 더 많은 학생을 유치하기 위하여, 원장과 미예, 게리는 하나의 연극을 벌인다. 초등학교 때부터 원어민 강사에게 가르치려고 하고, 카드 결제를 거부하는 학원 등의 사교육 시장의 모습을 그려냈다는 것은 최근 이슈화되고 있는 문제의 형상화라는 것 이상의 의미를 갖지는 않는다. 문제적인 것은 이 게리라는 인물의 정체성이다. 게리는 한국인이다. 한국인인데, 혼혈인의 외모를 가진 한국인이다. 그의 부모는 “오리지널 한국인”인데도 불구하고, 그는 “다국적인 외모”를 갖고 있다. 단일민족국가를 표방하는 한국에서, 이 외모는 그의 소년시대를 뿌리 찾기에 열중하게 하고, 오해로 얼룩지게 했다. 그는 국사 시간에 ‘단일민족국가’라는 말을 읽을 수 없었다. 그의 행동을 반항으로 오해한 국사 선생은 그를 벌주고 반성문을 쓰게 한다. 그 과정에서 국사선생은 그를 혼혈이라 오해하고 혼혈이면 더 독심을 품고 잘해야 하며, 민족은 핏줄이 아니라 가슴에 있는 것이라고 말한다. 민족은 핏줄이 아니라 가슴에 있다는 것은 민족이란 이름으로 비한국인을 한국인으로 포섭하는 논리나 다름없다. 그런데 이 포섭에는 ‘너는 한국인이 아니다’라는 배제의 논리가 포함되어 있다. 게리는 국사 수업의 사건 이후, 혼혈인으로 살아가기로 마음먹는다. 한국인이지만, 외모 때문에 혼혈인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아이러니한 일이다. 이제 그는 자신의 ‘원판’을 게리 워커 존슨이라는 혼혈인으로 삼고, 그를 모방 ․ 모조한다. 란셀 백이 이미테이션과 오리지널이 구분 안 가듯, 게리 워커 존슨을 모방한 후 그는 게리의 삶을 살고 그것이 그의 삶을 더 편하게 만든다. 이렇게 그를 혼혈인으로 살아가게 만든 배제의 원리는 국방의 의무에 가서는 작동하지 않는다. 외모로 인해 군대에서 고생할 것을 배려한 혼혈인 병역복무면제 조항은 외모만 혼혈인 그에게는 적용되지 않는다. 그는 ‘오리지널 혼혈인’이 아닌 ‘이미테이션 혼혈인’인 것이다. 그는 ‘오리지널 한국인’도 아니며 ‘오리지널 혼혈인’도 아닌 이중의 ‘이미테이션’적 존재로 이중의 배제를 받는다. 이 이중의 배제에서 그는 ‘이미테이션’의 삶을 선택한다. 이미테이션 백을 오리지널인 것처럼 매고 다니는 세상이다. 아니 오리지널이 이미테이션일 수 있단 심증이 있어도 묵인된다. 게리도 서울을 모방한 ‘인공의 도시’에서 이미테이션의 삶을 산다. 그것이 그의 자리이다. 원장은 게리가 한국인이라는 것을 알지만 자신의 이익을 위해 그를 원어민 강사로 둔갑시키고 모종의 합의를 본다. 게리의 짝퉁 삶은 그 자신의 선택이지만 자본주의와 민족주의가 결합한 국가의 포섭과 배제의 논리 안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것, 이것이 이 소설이 근본적으로 던지는 물음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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