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재웅, 그런데 소년은 눈물을 그쳤나요, 실천문학, 2005.
중년의 사내는 자신의 건물과 관련한 법률적인 문제들에 대해 떠들어댔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나는 건물과 관련된 법률들은 알지 못했다. 하지만 한 가지는 분명히 알고 있었다. 그런 건물들이 어떤 사람들에 의해서 건축되고 있는지는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들은 가난했다. 그들은 세상을 부유하게 살아갈 재주가 없었다. 그들은 흙에서 자랐거나 적어도 그렇게 자란 사람들의 후손이었다. 그들은 어느 날 갑자기 병원의 침대 위에 하얗게 질려 누울 수 있었고, 그러면 세상은 그들의 가족들을 갈기갈기 찢어놓을 수도 있었다. 그들의 육체적 죽음은 새로운 가난을 낳았다. 그것은 순환될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었다. 그러나 대체로 순환되었다. 그 순환의 연쇄고리를 절단 내려면 특별한 능력이나 운명의 힘이 필요했다. 소수는 것을 지녔다. 다수는 그것을 지니지 못했다. 소수는 무슨 일이든, 선언이든, 질서유지든, 저항이든 할 수 있었지만 다수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다. 다수는 항상 무기력했다. 그리고 어느 날 갑자기 침대 위애 늙은 천사로 죽어갔다. 나의 아빠가 그랬다. (p. 48)
+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이 떠오른다. 그런데, 정말 소년은 늙은 소년이었을까. 소년은 자신이 늙은 소년이라고 생각하지만, 아직 그가 모르는 세상이 있음을, 그는 알게 될까가 궁금했다. 알게 하는 과정에서, 이 작가의 역량을 알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우선, 잘 읽히고, 호기심을 자아내고, 가슴 뭉클한 소설이다.
중년의 사내는 할머니와 나는 때때로 먹을 것이 없어서 굶곤 했다. 내 손바닥은 가려웠고, 하얗게 껍질이 벗겨졌다. 할머니는 내가 자라기 위해서 허물을 벗는 거라고 했다. 그리고 눈이 눈물로 짓물러졌다. 내가 왜 우냐고 물으면 그녀는 내가 자라는 게 기쁘기 때문이라고 했다. 나는 아주 나중에야 내가 영양실조에 걸렸으며 그 때문에 자랄 수 없다는 걸 알게 됐다. 나는 할머니를 증오하지는 않았다. 그녀에게는 나를 속이는 게 돈을 벌어 오는 것보다 쉬웠다.
나는 그걸 누군가에게 말한 적이 단 한번도 없다. 세상은 너무도 풍요로워서 그 말을 믿을 사람이 아무도 없을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p.75)
+ 어디선가, 이젠 '가난'을 얘기하는 작가가 없단 말을 들은 것 같다. 그래서 이 작가가 특별해 보이는지도. 먼 옛날 이야기처럼 들리는 '가난'이, 그 말을 '믿지 않는' (혹은 믿지 않도록 강요하는) 세상때문이라는 걸 간파한다.
그녀 때문에 많은 아이들이 울었다. 그녀는 결코 울지 않았다. 아무리 많이 맞아도 울지 않았다. 오히려 덩치 큰 사내아이들이 주먹을 휘두르다 겁에 질려 울곤 했다.
"넌 강하구나." 나는 말했다.
"맞아. 나는 강해. 나는 눈물을 흘리지 않는 법을 알아."
"어떻게 하면 울지 않는데?"
"마음 속으로 울면 돼." (p. 250)
나는 송봉권에 대해, 송봉권의 마음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했다. 나는 그를 알 수 없었다. (p.261)
"모든 사람들이 내 곁을 떠나가요. 난 그게 겁이 나요." 나는 말했다.
"넌 늙긴 했지만 여전히 소년이야. 그것을 부정할 수는 없어. 네가 정말로 어른이 되고 싶다면 너는 사람들을 떠나보내는 데 익숙해져야 해. 떠나가는 것도."
" 난 그것에 충분히 익숙해졌어요. 그래서 늙어버린 거에요."
"어쩌면 그럴 지도 몰라. 하지만 넌 아직 어른이 될 수는 없어. 어른이 되려면 갖춰야 할 게 많아. 너는 목소리가 갈라질거야. 수염도 날 거고. 네 사타구니나 겨드랑이에도 털이 날 거야. 네 몸에서 비린내가 날 거야. 너는 좀더 괴물이 되어야 해."
"난 충분히 괴물이에요. 아저씨도 아시잖아요. 그렇게 되지 않아도 난 충분히 괴물이에요."
"너는 내 말뜻을 알지 못해." 그는 말했다.
"아저씨도 제 말뜻을 알지 못해요. 나는 아저씨가 상상하는 것 이상으로 괴물이에요."
"그래, 어쩌면 그럴지도 몰라" 그가 내 양 어깨를 짚었다.
"이제 그만하자. 난 이제 가봐야 해. 난 네가 보고 싶었어."
"나도 아저씨가 보고 싶었어요."
"그래 고맙구나. 난 이제 정말 가봐야겠다."
하지만 그는 내 어깨에서 두 손을 떼지 않았다. 이윽고 그는 나를 가만히 포옹했다. (p.288)
+ 소년은 자신이 '늙었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 대목에서 달수가 말하듯, '늙은' '괴물같은' 소년일지 몰라도, 그것은 소년을 꾸미는 수식어일 뿐, 그는 여전히 소년이다. 비루하고 모순투성이인 세상을 이미 알고 있는 소년이지만, 그는 아직 '비린내가 나지 않는' 순결한 몸인 것이다. 소년은 사람을 죽이는 것이 간단한 일이 아니라는 곽호 아저씨이 말이나, 곽호 아저씨를 죽여도 달라질 것이 없단 누나의 말을 이해하지 못하여, 송봉권과 누나의 사랑을 알 수 없다. 소년은 잠이 안 오면 술이나 담배를 피우지만, 그것은 타락의 모습을 띠지 않는다. 그는 자신이 괴물 같다고 느끼지만, 소년은 아직은 순결한 몸인 것이다.
"세상은 호락호락하지 않아. 넌 그걸 배워야 될 거다. 그래야 어른이 될 수 있는 거지. 넌 세상을 다 아는 것처럼 굴지만 결국 네 누나의 치마폭에서 조금도 벗어나 있지 못해. 언젠가 그걸 알게 될 거다. 네가 경험한 것들은 그리 대단한 게 아냐. 세상은 네가 경험한 것보다 몇백 배는 복잡하지. 단순한 게 아냐. 네가 이십 년쯤 더 산다면 내 말뜻을 알게 될 거다. 너는 좀더 잔인한 것들을 경험해야 해. 고통스러운 것도. 그러면 나를 이해하게 될 거다. 넌 아직 어린애에 불과해." (p.295)
++ 유사가족 관계. 비정상적이지만, 곽호가 신문을 보고, 누나는 식사를 준비하고, 소년은 책을 읽는 장면이 몇 번 나오는데, 그 모습의 묘사가 일반 가정처럼.
++ 누나가 곽호 찌르고 나왔을 때, 역무원과 여관 노인의 도움, 역무원, 귀찮아서, 여관노인, 누나가 젊은 여자라서 흑심.
++ 할머니의 가난과 누나의 가난의 차원이 다름. 화려한 삶의 이면의 누나의 가난. / 매춘 또한 예전과 양상이 다른.